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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예견된 슬픔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비스와바쉼보르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두 번은 없다’, ‘끝과 시작’, 문학과지성사, 2016.   아이가 죽었다. 생전에 깃털처럼 가볍던 디만시아란다가 세 살이 되도록 부모도 모른 채, 장애를 갖고 살던 땅을 떠나 하늘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하늘의 별이 되었다. 이 땅에서 그토록 짧은 시간을 보내고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아란다는 시 정부 기관에 의해 생후 6개월쯤으로 추정되는 때에 장애 고아원에 위탁되었다.   아이티 현지 스태프 조나단이장애고아원의 아이 둘이 폐가 안 좋다는 연락을 한 것은 지난해 12월이었다. 병원을 가보지 그러느냐는 이야기는 한가한 소리였다. 아이들이 치료받을 만한 병원을 찾기가 힘들었다. 공립병원의 빈자리를 어렵게 찾았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기에는 의약품도 의료진도 턱없이 부족했다. 아란다는 너무 늦게 병원을 가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도 못하고 하늘나라로 돌아간 것이다.   지난해 11월에 수도 포토프린스에서 가장 현대적 시설을 갖춘 병원이 갱들의 약탈로 무너졌다. 12월에는 아이티에서 제일 큰 병원이 다시 개원하는 날 갱들이 총격을 가해 기자 두 명을 포함해 세 사람이 사망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지난해에 환자와 의료진이 갱들의 공격을 받은 이후 이들을 보호할 수 없다며 아이티에 있는 여러 병원의 문을 닫았다.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경찰도 아프면 병원을 찾고, 갱들도 다치면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폭력적이기만 한 갱들의 만행은 병원을 파괴하고 가뜩이나 무정부 상태인 나라의 의료체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무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도 거의 없거니와 문을 열고 있는 공립병원은 열악한 시설에 의약품이 부족하다. 갱들이 세력을 넓히면서 의료진도 손을 놓은 경우가 많아서 생명이 위험할 때 적절한 치료를 받기 어렵다.   아이티는 지금 겨울이다.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낮 최고 기온이 화씨 90도 안팎, 밤 최저 70도 안팎인데, 이런 날씨에도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곤 한다. 고아원 아이들은 아프면 말이 없어지고, 잘 움직이지 않는다. 아프다는 말도 못 하는, 평소보다 더 얌전해진 아이들을 버려두다가 병을 키우고 치료 시기를 놓치게 된다. 거기에다가 치료받을 병원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감기가 유행인 요즈음 우리가 돕는 고아원 원장 중 세 사람이 독감을 앓고 있고, 아이들도 상당수가 감기를 심하게 앓고 있다, 샬롬고아원의 쟌 목사는 기침을 계속하면서 피를 토한다고 조나단이 걱정스러운 메시지를 보냈다. 아이들이나 고아원 스태프가 아프면 우리는 긴장하면서 한편으로는 자꾸 슬픔을 상상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고아원을 짓누르고 있을 때 우리도 예견된 슬픔을 겪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시고 슬퍼하셨다. 우리는 아이티와 아이티 고아들의 앞날을 생각하며 막막한 마음으로 다가오는 슬픔을 미리 삼킨다. 아이티 고아원에 지원할 의료비를 송금하면서도 닥쳐올 슬픔은 더욱 커지고, 우리는 이미 예견하고 있던 아란다의 슬픔을 고이 싸매고 있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예견 슬픔 아이티 고아원 고아원 스태프 장애 고아원

2025-02-27

[삶과 믿음] 사랑은 어렵다

고등학생과 대학생들로 구성된 구호팀이 탁형구 선교사님의 안내로 장애 고아원(여호와 라파 하우스)을 처음 방문한 것은 2014년 여름이었다. 휠체어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어느 허름한 집 뒤채에 약 스무 명의 장애 고아들이 방치된 채로 있던 그 처참한 환경에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저 울기만 하다가 돌아와야 했다.   우리는 곧 장애 고아원을 제대로 된 주택으로 옮기고, 식량과 의약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현지 의사와 간호사를 통해 건강 검진을 하고, 휠체어를 보냈다. 뉴저지의 한 교회의 도움으로 2018년에는 더 큰 집으로 다시 이사했다. 서울에 계신 장로님이 장애 아동을 돌보는 열 명의 스태프에게 월급을 지급해 주셨는데, 그해 여름, 나를 만난 고아원 원장은 두 다리를 책상 위에 올린 채, 스태프 월급은 자기에게 주고 더는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미국의 큰 단체가 이 고아원을 전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한 때였다.   2019년부터 폭력 시위가 격렬해지더니 곧이어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 때문에 웬만한 NGO나 선교 단체는 아이티에서 모두 철수했다. 그리고 갱단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던 약 2년 전, 장애 고아원의 원장이 탁 선교사님을 찾아와 미국 단체가 갑자기 지원을 중단했다고 하소연했다. 이후 장애 고아원 원장은 다시 탁 선교사님에게 식량을 받아 가기 시작했다. 지난 7월 초, 거주 중이던 집에서 렌트를 못 내 쫓겨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탁 선교사님과 함께 고아원을 방문했다.   집 안에는 이삿짐이 다 싸여 있었고, 아이들은 전부 마당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10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세 명의 스태프가 돌보는 서른여덟 명의 장애 고아들은 나이가 들었지만, 모두 영양실조 증세를 보였고, 심각한 피부병을 앓고 있었다.   사랑은 어렵다. 아이티에서 우리의 사랑은 자주 시험을 받는다. 쌀을 사주면 원장이 당장 돈이 급해 팔아버리기도 하고, 학비를 부풀려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학비를 보내주었더니, 학교에 등록했다며 2년 전 영수증을 보여주기도 했다. 가난 때문에 때로 정직하지 못하게 되기도 하겠지만, 거짓말이 습관처럼 되풀이될 때마다, 먹고살 만해졌다고 등 돌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는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8월 말에 다시 아이티에 가면 장애 고아원을 방문할 것이다. 지난 7월, 6년 만에 나를 다시 만난 원장은 기운 없이 민망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지금 탁 선교사님과 우리는 다시 장애 고아들이 살 집을 찾으려고 한다. 장애 아동들이기에 병원이 가까이 있어야 하고, 사십 명의 장애 아동이 거주할 수 있는 큰 집이 필요하다. 아이티에서도 일 년 렌트는 만만치 않다. 시내의 웬만큼 큰 집 렌트는 일 년에 1만 달러를 훌쩍 넘는다. 지금 우리는 그 렌트를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사랑은 어렵다. 큰 단체가 돕기 시작하며 상황이 나아지니 더는 우리 도움은 필요 없다고 손사래 치던 원장의 오만한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도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장애 고아들의 얼굴을 보며 다시 마음 아파하고 있는 것은 진정한 사랑인지, 아니면 단지 우리의 일이 사랑이기를 바라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진심으로 우리의 일이 사랑이기를 기도한다. 사랑이 힘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아이들 때문에 멈출 수 없는 사랑이 사실 쉽지 않다. 조 헨리 / 목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사랑 장애 아동들이기 장애 고아원 고아원 원장

2024-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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